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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덕전(德田) 2020. 11. 19. 09:18

 

이런들 엇더하며 저런들 엇더하료

초야우생(草野愚生)이 이러타 엇더하료

하물며 천석고황(泉石膏肓)을 고쳐 무삼하료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랴  시골에 파묻혀서 세상의 공명이나 시비에는

아무 관심도 없이 살아가는 어리석은 사람이니 이렇게 살아간들 어떻겠는가.

더구나 자연을 버리고 살수 없는 이버릇을 억지로 고쳐서 무엇하겠는가.

 

연하(煙霞)로 집을 삼고 풍월(風月)로 버들 삼아

태평성대(太平聖代)예 병()으로 늘거 가뇌

이 중에 바라는 일은 허물이나 업고쟈

안개와 노을로 집을 삼고,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벗을 삼아

태평스러운 시대에 하는 일없이 병으로 늙어가고 있다.

이러한 생활에 바라는것이 있다면 내게 허물되는 일이나 없었으면 한다.

 

순풍(淳風)이 죽다 하니 진실로 거즈마리

인성(人性)이 어디다 하니 진실로 올흔마리

천하(天下)에 허다영재(許多英才)를 속여 말솜할가

순박한 순풍이 없어 졌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거짓말이다.

인간의 성품이 본래부터 어질다고 하는 말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이 세상의 많은 슬기로운 사람들을 말로써 어찌 속일 수 있겠느냐.

 

유란(幽蘭)이 재곡(在谷)하니 자연(自然)이 듣디 됴해

백운(白雲)이 재산(在山)하니 자연이 보디 됴해

이 중에 피미일인(彼美一人)을 더윽 닛디 몯하얘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난초가 산골짜기에 피었으니, 그 냄새가 자연히 맡기 좋구나.

흰구름이 산마루에 걸려 있으니 자연히 보기 좋구나.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 속에

묻혀 살건만, 그럴수록 우리 임금님을 더욱 잊을 수가 없구나.

 

산전(山前)에 유대(有臺)하고 대하(臺下)애 유수(有水) 로다

떼 많은 갈며기는 오명가명 하거든

엇더다 교교백구(皎皎白駒)는 어리 멀리 마음 하는고

산 앞에는 낚시터가 있고, 그 언덕 아래로 물이 흐르는구나.

갈매기들은 떼를 지어 오락가락 하는데,

어찌하여 저 귀하고 좋은 흰망아지는 멀리 뛰어갈 생각을 하는가.

 

춘풍(春風)에 화만산(花滿山)하고 추야(秋夜)애 월만대(月滿臺)

사시가흥(四時佳興)이 사람과 한 가지라 하물며 어약연비(魚躍鳶飛)

운영천광(雲影天光)이야 어늬 끝이 있을고

봄바람에 꽃은 산에 가득 피어 있고, 가을 바람에는 달빛이 누대에 가득 비치니

계절마다 일어나는 흥취는 사람의 흥겨워함과 같구나 게다가 물속에서는 고기가 뛰고 하늘에는 소리개가 날며

아름다운 구름은 그림자를 짓고 찬란한 태양은 그빛을 온누리에 던진다.이러한 대자연의 조화에 어찌 한도가 있겠는가.

 

천운대(天雲臺) 도라드러 완락제(玩樂齊) 소쇄(蕭灑)한데

만권(萬卷) 생애(生涯)로 악사(樂事) 무궁(無窮)하얘라

이 중에 왕래풍류(往來風流)를 닐어 므슴할고

천운대를 돌아서 들어가니 공부방인 완락제가 깨끗한데

거기서 많은 책을 벗삼아 생활하는 즐거움이 끝이 없구나.

이렇게 지내니 때때로 바깥을거니는 즐거움을 새삼말해서 무엇하겠는가.

 

뇌정(雷霆)이 파산(破山)하야도 농자(聾者)는 못 듣나니

백일(白日)이 중천(中天)하야도 고자(瞽者)는 못 보나니

우리는 이목총명(耳目聰明) 남자(男子)로 농고(聾瞽) 같지 마로리

우룃 소리가 산을 무너뜨릴 듯 심하게나도 귀머거리는듣지못하며

밝은 해가 하늘 높이 솟아도 장님은 못 보는 것이니

우리는 귀와 눈이 밝은 남자가 되어서 귀머거리나 장님이 되지 말아야 한다.

 

고인(古人)도 날 못보고 나도 고인(古人) 못 뵈

고인(古人)을 못 봐도 녀던 길 앞에 있네

녀던 길 앞에 잇거든 아니 녀고 엇뎔고

옛 성인도 나를 보지 못하고 나도 또한 옛 성현을 뵙지 못했네.

그러나 옛 성현을 직접 보지 못했지만 옛 성현들이 행했던

바른 길이 우리 앞에 가르침으로 남아있다.그 분들이 행하던

바른길이 앞에 있는데 우리가 행하지 않고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시(當時)예 녀든 길을 몇 해를 버려 두고

어디 가 다니다가 이제야 도라온고

이제나 도라오나니 년듸 마음 마로리

그 때 학문과 수양에 힘쓰던 길을 몇 해 씩이나 버려두고

어디가서 무엇을 하다가 이제야 돌아 왔는가.

이제라도 돌아 왔으니 다시 딴데 마음을 두지 않겠다.

 

청산(靑山)은 엇데하야 만고(萬古)애 푸르르며

유수(流水)는 엇뎌하야 주야(晝夜)애 긋디 아니난고

우리도 그치지 말아 만고상청(萬古常靑) 호리라

푸른 산은 어찌하여 영원히 푸르르며,

흐르는 물은 또 어찌하여 밤낮으로 그치지 않고 흐르는가.

우리도 저 푸른 산과 흐르는 물처럼 변하지 않고 언제까지나

푸르게 살리라.

 

우부(愚夫)도 알며 하거니 긔 아니 쉬운가

성인(聖人)도 못다 하시니 긔 아니 어려운가

쉽거나 어렵거낫 듕에 늙는 줄을 몰래라

어리석은 사람은 알며 하거니, 그것(학문)이 쉽지 아니한가.

성인도 다하지 못하시니 그것이 아니 어려운가.

쉽거나 어렵거나 간에 늙는 줄을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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