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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문과 신숙주

덕전(德田) 2021. 11. 18. 13:14

오어사 둘레길풍경

 

성삼문과 신숙주

 

백합이 썩으면 잡초 썩는 것보다 오히려 더 고약한 냄새가 난다.”

세익스피어가말했다.

성삼문과 신숙주는 집현전 출신으로 둘도 없는 지기였다.

이들은 세종대왕의 명을 받고 당시 요동에 귀양와 있던 명나라 한림학사

황찬을 여러 차례 찾아가 음운에 대한 자문을 받고 와서 훈민정음 창제에

큰 공을 세웠다

또한 세종이 만년에 병환으로 온천에 갈 때에도 함께 모시고 갔다.

다시 말하면 젊은 선비로서 세종의 크나큰 사랑을 누구보다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권력이라는 꿀단지가 앞에 놓이자, 너무나도 대척적인 길을 갔다.

한 분은 꿀단지를 땅바닥에 내리쳤고, 다른 한 사람은 꿀단지를 잽싸게

껴안았다. 한 분은 해가 지는 서쪽으로 갔으나,

한 사람은 해뜨는 동쪽으로 갔다. 그래서 다시는 영원히 만나지 못했다.

양지를 찾아 간 사람은 매춘부가 몸을 팔 듯 선비정신을 팔아먹었다.

그러나 반대로 간 딸깍발이는 목숨을 버렸지만 선비의 지조와 절의를

지켜 이 땅의 지성사에 새롭게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성삼문(14181456)은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서릿발같은

천추대의를 남기고 한창 나인인 38세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자신뿐만 아니라 함께 복위를 도모했던 아버지 승()도 극형을 당했고,

삼빙 삼고 삼성의 세 동생과, 맹첨 맹년 맹종과 갓난아기 등

4명의 아들이 모두 처형을 당했다.

딸깍발이 정신을 지킨 죄(?)로 멸문지화를 당한 것이다.

그러나 신숙주(14171475)는 선비정신을 권력의 꿀단지와 맛 교환했다.

딸깍발이 정신(선비정신)을 판 대가로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으니

영의정을 두 번이나 역임했으며 고령부원군으로 봉해졌다.

이 모두가 곡학아세한 대가였다.   그는 58세로 죽었다.

성삼문보다 겨우 19년을 더 살은 것이다.그의 자손들도 영화를 누려,

아들 면은 도승지와 함길도 관찰사를, 손자 용개는 좌의정을 지냈다.

후세 사람들은 신숙주의 훼절을 미워하여, 1456(세조 2) 정월에 죽은

부인 윤씨가, 4월에 사육신의 옥사가 나자 살아서 돌아온 남편을 보고

당신은 평소 성삼문 등과 형제와 같이 지냈지 않았소.

당신이 죽었다는 소문이 들려오면 나는 자결할 참이었는데 홀로

살아서 돌아올 줄은 몰랐소하니

그는 말문이 막혀 몸둘 곳이 없었다(송와잡설)는 유언비어를 만들어 냈다.

이는 선비정신과 지조를 판 인과응보의 하나였다.

 

성삼문의 삶과 신숙주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세익스피어는 백합이 썩으면 잡초 썩는 것보다 오히려 더 고약한

냄새가 난다  했는데, 나는 선비가 썩으면 그 누추한 이름이 청사(靑史)

에 기록되어  악취가 천추만세에 전해진다고 말하련다.

이 쓸쓸한 만추(晩秋)의 밤은 자꾸 깊어가는 데 천추대절을 청사에 남긴

성삼문 선생이 그리운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이 풍진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생각해볼 일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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