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중반쯤이였나봅니다 .
저는 청빈한 유교적 가정의 아들로 어렵게 자라서 경제적 상황도,
배움도 모두 부족한체로 군을 제대합니다 .
그해 연만하신 조모님 께서 별세하시고,
이듬해 지병앓으시던 아버님께서도 연세 오십에 타계하셨지요.
집안의 장손이라는 무거운 짐과 육남매 형제,자매 를 고스란히
제어께에 메단체로 세상살이를 시작했습니다 .
만기 30만원 곗돈부어 형식만차린 결혼을 했구요 .
그날 이후로 저에게는 구세주 와 같은 아내가 있었습니다 .
5대 조,부모 봉제사하고,
자식 3남매 낳아기르며 ,
어린시동생,누이 자식처럼 돌봐가며 ,
쥐꼬리 같은 월급받아 줄라치면,
시동생 학비내고 밥쌀 쌀돈모자라서 ,
이웃에게 차용금 꾸러다니던.........
그런 세월이 한동안 흐릅니다 .
시동생 시누이 필혼시킨날
저에 어머님은 두다리펴고 주무실수 있다했지만 ,
제 아내는 눈물짖고 있었습니다 .
왜냐구요 ?
제 자식 학비며 ,양육비 모아둔게 없었으니요 .....
그자식 기르든 어미의 정성
아비인 저로서는 흉내조차 낼수없었답니다 .
자식셋 모두다 고3 수험생이면 ,
비가오나 바람이부나 춥거나 덥거나
이른새벽 법당 찾아가서 백일불공 정성다했고 ,
그자식 3남매 석,박사 길러내서
제짝찾아 필혼하고 돌아서는 날
저는 그를 처다보고 부처라 했습니다 .
거룩한 모정을 몸으로 보여준 부처님같았습니다 .
이제 세월은 여지없이 흘러서
흰머리 늘어나는 제 아내를 처다보면,
무능했던 자신이 부끄럽고
무심했던 남편노릇에 한없이 미안해지는것은
그것이 세월탓 만은 아니겠지요 ?
저는이제
남은세월 그를 처다보며 웃는얼굴로 말할것입니다
나는 당신이 있어 존재할수 있었다고......
이제 당신을 위한 삶을 살아갈것이라고.....
그렇게 남은 여생 두손꼭잡고 함께가자고
등 도닥이며 고백 할것입니다
많이 많이 사랑한다고 ...............
2008년 오월 어느날 팔 불 출
[나훈아 마지막 장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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