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의재(四宜齋)
- 思宜澹(사의담) ; 생각은 맑게,
- 貌宜莊(사의장) ; 용모는 단정하게,
- 言宜訒(언의인) ; 말은 적게,
- 動宜重(동의중) ; 행동은 무겁게,
다산 정약용이 ‘황사영 백서 사건’에 연루돼
형 정약전과 함께 전라도에 유배된 것은
1801년 (신유년) 11월 22일이다
나주의 율정에서 형 약전과 헤어진 뒤 이튿날
강진에 도착했으나 거처를 구하지 못했다.
집집마다 문을 닫고 유배온 사람이라 다산을
응대 해주지 않아서였다.
동문 밖 주막집 노파의 골방을 겨우 얻어 짐을 푼
다산은 그주막집의 당호(堂號)를 사의재(四宜齋)
라고 지었다. 즉 ‘네 가지를 올바로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네 가지란 서두의 사의재(四宜齋)로
생각은 맑게, 하고 용모는 단정하게, 하며
말은 적게,하고 행동은 무겁게’ 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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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유배의 신분 이였지만 다산 선생의
행신에 대한 자기수칙을 보면 그 인품의
고매함을 알수 있는 대목입니다
자신이 처한 유배지 생활에서도 올곧고
반듯한 수칙을 정해서 실천하는 것은
누구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그는
후세에 추앙받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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