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모음방

이언적(李彦迪)의 첫눈(新雪)

덕전(德田) 2016. 1. 29. 10:19

 

 

                      

 

 

        첫눈(新雪)


       新雪今朝忽滿地 [신설금조홀만지]    첫눈 내린 오늘 아침 땅을 가득 덮었으니

     況然坐我水精宮 [황연좌아수정궁]    황홀하게 수정궁에 나를 앉혀 놓았구나

     柴門誰作剡溪訪 [시문수작섬계방]    사립문에 누군가가 섬계(剡溪) 찾아 왔으려나

     獨對前山歲暮松 [독대전산세모송]    앞산에 소나무를 나 혼자서 마주하네.  

     探道年來養性眞 [탐도년래양성진]    몇 해 도를 찾아 참된 성품 길렀나니

     爽然心境絶埃塵 [상연심경절애진]    마음 경계 상쾌해라 티끌 먼지 하나 없네.

     誰知顔巷一簞足 [수지안항일단족]    안회의 단사표음(簞食瓢飮) 족함을 누가 알리 

     雪滿溪山我不貧 [설만계산아부빈]    눈이 시내와 산에 덮히니 난 가난하지 않네.

 

 

 

 

 


  삼도헌과 함께 맛보기


  흰눈이 밤새 내려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으면 황토빛 땅은 은세계가 된다.

  그래서 시적화자는 황홀하게 자신을 수정궁에 앉혀 놓은 것 같다고 표현했다.


  세 번째 구(句)는 서성 왕희지(王羲之)의 다섯째 아들인 왕휘지(王徽之)에

  얽힌 고사이다.

  왕휘지가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어느 날 밤

  갑자기 자신이 거주하던 산음에서 먼 섬계(剡溪)에 살고 있던 친구인

  동진의 문인화가 대규(戴逵)가 그리워서 배를 타고 그를 찾아갔다.

  그러나 밤새 배를 저어 정작 친구의 집 앞에 이르자 배를 돌려 돌아왔다.

  다른 사람이 그 까닭을 물었더니, 

  "원래 흥을 타서 왔다가 흥이 다해서 돌아가는 것이니(乘興而來 盡興而反)

  어찌 꼭 친구를 볼 필요가 있는가". 라고 그는 대답했다.

  이 대답은 널리 인구(人口)에 회자된다.

  따라서 세 번째 구에서 회재 또한 '내 친구 중 누가 왕휘지처럼

  지난밤에 흥이 나서 나를 찾아 왔다가 그냥 돌아가지나 않았을까'하는

  은근한 기대를 숨기지 않고 있다.

  눈 내리는 겨울밤 자기를 찾아와 줄 생각을 하는

  고상한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겠는가.


  넷째 구에서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세한도(歲寒圖)가 연상된다.

  한해가 저물고 햇살이 적어지면서 수목들은 나목이 되어간다.

  여름철 잎이 풍성할 때는 사람들이 많이 찾았지만

  시린 겨울에 잎이 모두 낙엽되어 떨어진 뒤

  눈밭에 홀로 서 있는 처지가 되니 찾는 이가 없어진다.

  그러나 많은 나무 가운데 소나무는 홀로 푸른 기상을 잃지 않고 있다.

  작자는 여기서 자신의 정신적 지향을 소나무로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 생활이 힘들더라도 눈을 보면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는

  여운이 마지막구의 대미를 장식한다.

  차가운 겨울일수록 따뜻한 온돌방이 그리운 법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정겨운 벗이 있다면 얼마나 훈훈해 질까

  이 시를 읽으신 뒤 오늘은 왕휘지처럼

  그리운 벗을 찾아 정겨움을 나누시기 바란다.



   이언적(李彦迪1491~1553)


  문신. 학자. 자 복고(復古). 호 회재(晦齋). 본관 여주(驪州).

  사간(司諫) 재직시 김안로(金安老)의 등용을 반대하다 그 일당에 의해 파직된 뒤, 

  경주 자옥산(紫玉山)에 들어가 성리학 연구에 전심했다.

  김안로 일당이 거세된 후 재등용, 좌찬성. 원상 등을 역임했으나,

  윤원형(尹元衡) 등의 모함으로 강계(江界)로 유배, 그 곳에서 생을 마쳤다.

  성리학자로서 퇴계의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저서에 <회재집> 등이 있다. 시호는 문원(文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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