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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덕전(德田) 2014. 4. 3. 12:06

석주 권필의 매화(삼도헌의 한시산책 316)

 

 

              

 

 

 

 

 

  [통도사 홍매]

 

 

 

  梅花(매화) / 權鞸(권필)

 

 

 

 

  (매)

  梅(매)

 氷骨(빙골)

                  玉腮(옥시)                  

                           臘將盡(납장진)                           

春欲廻(춘욕회)

北陸未暖(북륙미난)

南枝忽開(남지홀개)

 烟朝光掩淡(연조광엄담)

月夕影徘徊(월석영배회)

        冷蘂斜侵竹塢(냉예사침죽오)          

        暗香飛入金罍(암향비인금뢰)          

        始憐的皪凌殘雪(시련적력능잔설)        

    更惜飄颻點綠苔(갱석표요점녹태)      

      從知勁節可比淸士(종지경절가비청사)      

     若語高摽豈是凡才(약어고표기시범재)      

  愛幽獨尙容詩人看去(애유독상용시인간거)  

    厭喧鬧不許狂蝶尋來(염훤료불허광접심래)    

   試問登廟廊而調鼎鼐者(시문등묘랑이조정내자)   

何似西湖之上孤山之隈(하사서호지상고산지외)  

 

 

 

 

    腮(뺨 시), 臘(섣달 랍), 蘂(꽃술 예), 罍(술독 뢰), 皪(빛날 력),

     飄(회오리바람 표), 颻(불어 오르는 바람 요), 勁(굳셀 경), 摽(칠 표),

     喧(떠들썩할 훤), 鬧(시끄러울 료), 鼐(가마솥 내), 隈(굽이 외) 

 

 

 

 

  매

  매화

  얼음뼈

  옥같은 뺨

   섣달이 다 가고

  봄이 오려 하는데

  북쪽은 아직 춥건만

  남쪽 가지 벌써 피었네

  아침엔 안개가 빛 가리고

  저녁엔 달 그림자 배회하네

  차가운 꽃술 대숲을 넘나들고

  그윽한 향기 금술잔에 스며드네

  흰 꽃잎 추위에 떠는 모습 안쓰럽고

  바람에 날려 이끼에 지니 애석하구나

  굳은 절개 맑은 선비에 견줄 만함 알겠고

  드높은 기개는 어찌 뭇 사람에게 비유하랴

  홀로 있기 좋아서 시인이 오는 것은 용납하지만

  드러남을 싫어하여 미친 나비 찾아옴은 허락지 않네

  묻노라 묘당에 올라 정사를 맡아 권세를 누리는 것이

  어찌 임포가 놀던 서호의 위 고산의 구석만 하겠는가

 

 

 

 

 

 

삼도헌과 함께 맛보기

 

 

 

우리는 봄꽃을 보면서 봄이 온 것을 느낀다.

봄꽃 가운데 가장 먼저 개화하는 매화는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가슴을 절절하게 울렸다. 이호우 시인은

“아프게 겨울을 비집고 봄을 점화(點火)한 매화”라고

매화를 노래하였다. 해마다 필자도 봄을 맞으러 남쪽으로

탐매여행을 떠난다. 금년에도 양산 통도사 절집 앞마당에서

풍상을 이기면서 자리를 지키는 오래된 홍매를 보러갔다.

통도사는 5월 31일 떠나는 9번째 서예세상 답사지이다.

 

통도사는 해인사 및 송광사와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삼보사찰 가운데 하나이다. 통도사는 불보사찰이기에 사찰마다

있는 불상이 없다.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내에서 불화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성보박물관도 있다.

매화와 불교유적을 한꺼번에 살펴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충청권이나 수도권에서는 쉽게 가볼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 소개하는 매화시는 조선조 선조조에서 광해조 초기까지

활동한 문인 권필(權韠, 1569~1612)이 《석주집(石州集)》에

남긴 특이한 모양의 시이다. 이런 형태의 시는 5언이나 7언이 아닌 

탑모양으로 글자를 배치하였기에 보탑시(寶塔詩) 라고 한다.

 

석주는 소나무·대나무·매화·국화·연꽃 등을 보탑시로

읊기도 하였다. 보탑시는 탑 모양으로 쌓아올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글자 수가 층층이 늘어난다고

하여 층시(層詩)라고도 한다. 또한 한 글자에서 열 글자까지

단계적으로 계단을 이루며 늘려가는 시체라고 하여

자일언지십언체(自一言至十言體)라고도 한다.

이 시 마지막 구에는 매처학자를 자처한 임포의 삶을

상찬함으로써 고상한 매화의 운치를 그려내고 있다. 

 

 

      

석주  권필(1569~1612)

 

 

 

조선중기의 문관, 본관은 안동, 자는 여장(汝章), 호는 석주(石洲),

           동몽교관(童蒙敎官;어린이를 교육시키기 위해 각 郡縣에 설치한 벼슬)에              

있다가 벼슬에서 물러나 강화도에 가서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다.

특히 선조는 시재(詩才)가 뛰어난 석주의 시 몇 편을 본 뒤

감탄하여 향상 서안(書案)에 두었다고 한다.

석주는 당시 권신 이이첨이 교유 할 것을 간청 하였으나 거절하였고,

임진왜란 때 에 주화(主和)파 두 신하의 목을 벨 것을

요청하는 등 자신의 주장을 뚜렷이 한 외골수였다. 

 

그는 광해군 비(妃) 류(柳)씨 척리들의 세력을 비판하는

궁류시(宮柳詩)를 지어 풍자한 것이 광해군에게 발각되어

매를 몹시 맞고 경원부로 귀양 가는 길에 동대문 밖에서

사람들이 동정으로 주는 술을 과음하여 사망했다.

인조반정 후에 사헌부지평에 추증되었고,

저서에 석주집(石州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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