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의 방

오월

덕전(德田) 2012. 5. 3. 10:52

 

 

 

                     오월 / 이외수


아이야 오늘처럼 온통 세상이 짙푸른 날에는
지나간 날들을 떠올리지 말자
바람이 불면
허기진 시절을 향해 흔들리는
기억의 수풀
시간은 소멸하지 않고
강물은 바다에 이르러 돌아오지 않는다
연락이 두절된 이름들도
나는 아직 수첩에서 지울 수 없어라
하늘에는
만성피로증후군을 앓으며 뭉게구름 떠내려 가고
낙타처럼 피곤한 무릎으로 주저앉는 산그림자
나는 목이 마르다

아이야 오늘처럼 세상이 온통 짙푸른 날에는
다가오는 날들도 생각하지 말자
인생에는 도처에 이별이 기다리고
한겨울 눈보라처럼 흩날리는 아카시아 꽃잎
그 아래
어깨를 늘어뜨리고
모르는 사람 하나 떠나가는 모습
나는 맨발에 사금파리 박히는 아픔을 배우나니



'시인 의 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남과 이별/ 조병화  (0) 2017.11.08
가을은 내 남자의 향기로 술렁인다 / 정창화  (1) 2014.10.08
멀리 가는물/ 도종환  (0) 2010.08.20
정천한해(情天恨海)  (0) 2010.08.17
귀가(歸家) / 도종환  (0) 2010.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