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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음

덕전(德田) 2011. 12. 13. 12:12

 

 

 

아버지 마음

                                박찬석박사/ 전 경북대총장

내 고향 경남 산청은 예나 지금이나 생활환경이 별반 다르지 않다.
아버지는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나를 대구에 있는 중학교로 보내셨다.
그해 학교성적이 반에서 68/68등으로 꼴찌를 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못 배운 설움을 자식을 통해 풀고자 했는데
이런 성적표를 차마 보여드릴 수가 없어서 잉크로 1/68로 고쳐 보여드렸다.
친지들이 몰려와 “찬석이는 공부 잘 했더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앞으로 봐야제, 이번에는 1등을 했는가배.” 하셨다.
친지들은 “1등을 했으니 책거리를 해야제.”했다.
이튿날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오니 아버지는
한 마리뿐인 우리집 돼지를 잡아 동네잔치를 하고 계셨다.
“아부지….” 하고 불렀지만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겁이 난 나는 어디론가 무작정 달렸다. 죽고 싶었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나 나는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45세 되던 해,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였다.
부모님 앞에 33년 전의 불효를 용서 받고 싶어 입을 열었다.
“어무이, 저 중학교 1학년 때 1등은 요….”하고 말을 꺼내려는데
옆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께서 내 말을 가로막으며
“알고 있다. 그만해라. 민우(손자)가 듣는다.”고 말씀하셨다.
자식이 위조한 성적표를 알고도 재산목록 1호인 돼지를 잡아 잔치를 하신
부모님의 마음을 박사이고, 교수이고, 총장인 나는 아직도 감히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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