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글방

범부(凡夫)의 자성록(自省錄)

덕전(德田) 2008. 12. 21. 22:31

 

 

겨울비가  고요히 내리는 일요일 아침,

바깥 나들이를 준비하는 내자(內子)의 모습을 봅니다.

간간히 희여진 머리카락들이 오늘따라 더 흰색입니다 .

그냥 가지말고 염색을 해주겠다는 제안에 못이긴척 그는 응했지요.

 

염색약을 배합하고  엷은 비닐을 두르고 염색을 시작합니다 .

머릿결속을 헤집어봤더니 반백을 훨씬 넘은것 같았답니다.

 

염색을하는 동안 저는 이런생각을 했지요 .

거슬러 30 여년전 그 흑진주같이 검고 윤기나던 머릿결

어이 이리도 희어 졌단 말인가 ?

지나온 세월 그져 무심히 옆에만 있으려니 했었는데,

이 머리가 이렇게 희어지도록 관심없이 지나왔는데 .......

 

가난한 종가(宗家)의 종부(宗婦)로 살아온 고역이 ~

무능한 남편을 만나서 쌓였을것 같은 불만이 ~

자식 셋을 낳아길러 그들이 떠난 빈둥지의 허전함이~

살같이 내달으는 무상한 세월의 안타까움이 ~

이렇게도 하얗고 윤기없는 머리로 만들었단말인가 ?

이제야 흰머리가 똑바로 보이다니  나는참 무심한 남편 이였구나 ....!!

 

이제 남은세월이  얼마일고 ..........?

이 머리를 나는 얼마나 더 염색해 줄수있을고 ........?

 

가슴 저 밑바닥에서  눈물이 올라옵니다 .

편안하고 귀하게는 커녕  고생만 덕지덕지 시켜온

회한의 눈물입니다.

토해낼수 없는 울음에 목이 콱 메여집니다 .

 

"머리가 많이 희여졌지요 ? "

그러나 대답을 할수가 없습니다 .

목이막혀....  올라오는 눈물을 다시 가라앉히기 위해,

염색약을 입힌 머릿카락만  자꾸자꾸 빗질을 합니다  한참을 .......

 

당신 " 머리가 반백(半白)이 되었구만 !!"

"내가 고생을 많이 시켜서 그런가 싶으네 "

얼른 담배 한개피를 들고 거실을 빠져나갑니다 .

품어내는 담배연기 속에 겨울빗줄기가 더욱 굵게 내립니다 .

 

참 부족하고  못난남편으로 살았어 .......

이제야 그것을 깨치고있으니 ,

저는 범부의 축에도 못끼는,   우둔하고 못난이로 살아왔나 봅니다 .

 

 

                                                   2008년 12월  21일   의암    이   상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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