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가 고요히 내리는 일요일 아침,
바깥 나들이를 준비하는 내자(內子)의 모습을 봅니다.
간간히 희여진 머리카락들이 오늘따라 더 흰색입니다 .
그냥 가지말고 염색을 해주겠다는 제안에 못이긴척 그는 응했지요.
염색약을 배합하고 엷은 비닐을 두르고 염색을 시작합니다 .
머릿결속을 헤집어봤더니 반백을 훨씬 넘은것 같았답니다.
염색을하는 동안 저는 이런생각을 했지요 .
거슬러 30 여년전 그 흑진주같이 검고 윤기나던 머릿결
어이 이리도 희어 졌단 말인가 ?
지나온 세월 그져 무심히 옆에만 있으려니 했었는데,
이 머리가 이렇게 희어지도록 관심없이 지나왔는데 .......
가난한 종가(宗家)의 종부(宗婦)로 살아온 고역이 ~
무능한 남편을 만나서 쌓였을것 같은 불만이 ~
자식 셋을 낳아길러 그들이 떠난 빈둥지의 허전함이~
살같이 내달으는 무상한 세월의 안타까움이 ~
이렇게도 하얗고 윤기없는 머리로 만들었단말인가 ?
이제야 흰머리가 똑바로 보이다니 나는참 무심한 남편 이였구나 ....!!
이제 남은세월이 얼마일고 ..........?
이 머리를 나는 얼마나 더 염색해 줄수있을고 ........?
가슴 저 밑바닥에서 눈물이 올라옵니다 .
편안하고 귀하게는 커녕 고생만 덕지덕지 시켜온
회한의 눈물입니다.
토해낼수 없는 울음에 목이 콱 메여집니다 .
"머리가 많이 희여졌지요 ? "
그러나 대답을 할수가 없습니다 .
목이막혀.... 올라오는 눈물을 다시 가라앉히기 위해,
염색약을 입힌 머릿카락만 자꾸자꾸 빗질을 합니다 한참을 .......
당신 " 머리가 반백(半白)이 되었구만 !!"
"내가 고생을 많이 시켜서 그런가 싶으네 "
얼른 담배 한개피를 들고 거실을 빠져나갑니다 .
품어내는 담배연기 속에 겨울빗줄기가 더욱 굵게 내립니다 .
참 부족하고 못난남편으로 살았어 .......
이제야 그것을 깨치고있으니 ,
저는 범부의 축에도 못끼는, 우둔하고 못난이로 살아왔나 봅니다 .
2008년 12월 21일 의암 이 상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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