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나 사이 / 이생진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들어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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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진(1929년생) 시인의 이 시는
내 몸의 주인인 기억이 하나둘 나를 빠져나가서
마침내 내가 누군지도 모르게 되는 고령에 되면
나는 창문을 열려고 창가에를 갔다가
그새 거기 간 목적을 잊어버리고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무엇을 꺼내려고 냉장고에 갔다가
냉장고 문을 열어놓은 채 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앞이 막막하고
울컥하게 됩니다
시인은 차분하게
이 참담한 상황을 시어로 정리합니다.
우리의 삶이란
서로 모르는 사이가 ~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
다시 모르는 사이로 ~
돌아가는 세월” 일 뿐이라고.......
그리고 자책하는 목소리에 담아
우리 모두를 나무라지요.
거창하게
인생이니, 철학이니, 종교니 하며
마치 삶의 본질 모두가
거기에 있기나 한 것처럼 핏대를
올리는 당신들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하고.
진리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누구나 닥아올 미래에 이런 순간을 맞게
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시를 감상 하면
공감도가 더 높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