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의 방

아내와 나 사이

덕전(德田) 2023. 3. 7. 05:43

 

 

 

아내와 나 사이 / 이생진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들어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

이생진(1929년생) 시인의  이 시는
내 몸의 주인인 기억이 하나둘 나를 빠져나가서
마침내 내가 누군지도 모르게  되는 고령에 되면

나는 창문을 열려고 창가에를 갔다가
그새 거기 간 목적을 잊어버리고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무엇을 꺼내려고 냉장고에 갔다가
냉장고 문을 열어놓은 채   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앞이 막막하고

울컥하게 됩니다 

시인은 차분하게
이 참담한 상황을 시어로  정리합니다.

우리의 삶이란
서로 모르는 사이가  ~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 

다시 모르는 사이로  ~
돌아가는 세월”  일 뿐이라고.......

그리고 자책하는 목소리에 담아
우리 모두를 나무라지요.

거창하게
인생이니,   철학이니,  종교니 하며

마치 삶의 본질 모두가 
거기에 있기나 한 것처럼 핏대를
올리는 당신들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하고.

진리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누구나 닥아올 미래에 이런 순간을 맞게

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시를 감상 하면 

공감도가  더 높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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