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신화
노자의철학
깨달음의 신화
깨달음이란 ‘관점의 변화’입니다.
이제까지의 착각이 떨어지고, 세상을 보는 시각이 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로 보는 것, 정견(正見)이 생긴다고도 합니다.
보통 깨달음은 매우 성취하기 어렵고, 깨닫고 나면 뭔가 훌륭한 존재가
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단지 그 사람의 시각과 관점이 바뀌는 것일 뿐입니다.
석가모니가 직접 설하신 고사 중 유명한 새끼줄의 비유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집 마당에 뱀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줄 알고,
무서워서 함부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계기로 그것이 뱀이 아닌 새끼줄이란 것을 알게 된 뒤에는,
무서운 생각은 없어지고 마음대로 마당을 활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깨달음이란 것도, 생각으로 이루어진 ‘나’가 실재하고 이것밖에 없다고
여기며 살다가, 그것이 허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관점의 변화입니다.
관점이 바뀌면 그에 따른 말과 행동은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물론, 예전에 새끼줄을 뱀으로 착각해서 보던 습성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
어두컴컴한 밤이 되면 저도 모르게 놀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저건 새끼줄이었지’ 라고 바로 본 사실을 되돌이키며
인식 체계속에 반복해서 저장시키면, 마당에 나갈 때마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어 예전의 착각과 그에 따른 두려움은 더 이상 없어지게 됩니다.
석가모니는 인류 사상 최초로 <무아와 연기>라는 진리를 설파하였습니다.
그가 법문을 설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관점 변화의 기회를 갖지 못하고
형이상학적 신화의 세계에서 빠져나오는 시간이 더 길어졌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가 설한 8만 4천 법문은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음의 신화’를 만들어 놓기도 하였습니다.
8만 4천 번뇌를 모두 극복해야 위없고 완전한 깨달음이며,
그 성취는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식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한 생각이 바뀌는 것은 시간이 필요 없는 일입니다.
뱀이 아니라 새끼줄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는 것처럼...
다만, 생활 가운데서 ‘저건 새끼줄이야’라고 반복해서 되돌이켜 더 이상
어떤 상황을 만나도 두렵지 않게 뿌리를 내리는 것은 시간이 좀 걸릴 수 있겠지요
깨달았다고 지금까지의 ‘내’가 어떻게 바뀌거나,
나 아닌 무언가 다른 것이 진정한 내가 되거나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언젠가는 사라질 순간적인 ‘나’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어떤 것에도 크게 집착하지 않으며
일어나는 생각에 속지 않고 생각을 잘 쓰며 사는 것이 전부입니다.
깨달음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도,
이러한 사실을 알게되면 쉽게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일이기 때문이니까요.
불교의 깨달음을 노,장의 무위 경지와 관련하여 생각해 봅니다.
무위는 삶과 세상을 보는 관점의 변화를 통해 획득되는 삶의 방식이 아닐까요.
깨달음은 공간 이동이 아니라 관점의 이동인 것이지요
깨달음을 얻었다 해서 속세를 떠나 다른 세상의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속세에 살지만 삶과 세상을 다르게 인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